일본 부동산의 몰락 시절, 거품이 터진 이유

 

 

1980년대 최고의 경제를 고도하며 달리던 일본.

89년 말 39,000포인트였던 니케이지수가 2003년 7,600포인트까지 곤두박질을 쳐버리게 된다.

 

 

도쿄, 나고야, 오사카 등

91년부터 2005년까지 주거지는 반 토막이 나버리고 상업지는 6분의 1수준가지 대폭락 해버렸다.

일본 경제를 떠받치던 부동산 거품은 감쪽같이 꺼져버렸다. .

 

이로 인해 부동산 호황 속에서 돈놀이를 즐겼던 은행과 기업들이 줄줄이 돈 줄이 막히고 도산하면서 실업자는 속출했고, 일본이 자랑하던 종신고용의 관행도 깨져버렸다.

 

1990년대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대목으로 기나긴 불황 속으로 빠져들게 된 것이다.

 

분명 1970년대까지, 일본의 기업들은 우수한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앞장 세워 미국과 유럽의 경쟁사들을 압도하며 세계 시장을 장악했다. 항간에는 초우량 기업으로 성장한 히타치, 소니가 인텔이나 IBM을 인수해버릴 것이다라고 전망해버렸을 정도.

 

전세계에서 수출로 벌어들인 돈이 엄청났기 때문에 도쿄 거리에는 풍요로움과 행복이 가득했고 경제 호황 속에 일손이 모자라니 면접만 보러가도 면접비로 몇 십만원을 줬다고 한다. 회사 면접비만으로 중고차를 샀을 사례가 있을 정도.

 

편의점 아르바이트만으로 홈시어터를 갖추었을 정도이니. 일을 하지 않는 사람도 많았다.

어떤 회사는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흑자 도산을 했다고 한다.

 

당시에 살아본 사람의 증언에 따름녀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안사면 바보였다고 한다.

어떤 걸 사도 올랐기 때문에 모두가 투자 천재가 되었다고 한다.

 

 

 

패전 국가였던 일본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일까?

 

1. 패전 후에 꽃길만 걷던 일본

미국에게 패전한 전범국인 일본은 경제 대국인 미국의 군사기지, 병참 기지로 사용되면서 공산주의 중국과 소련에 대항하는 자본주의 진영의 정착기지로 군사적인 많은 경제를 활성화하였다. 특히 6.25 전쟁이 일본의 발전성에 기여하게 되어버렸다.

 

2. 1950년대부터 시작된 수출

혼다 오토바이, 소니의 라디오, 다양한 기업의 전자 가전 업체의 엄청난 수출에 기여를 하였다. 그 이후에는 내수 시장으로 큰 성장을 이룬 도요타가 수출에도 크게 기여한 바가 있다.

 

3. 외부인 맞이에 대한 적극성

1964년에 IMF8조국과 선진국 클럽 OECD 회원국이 되었다. 거기다 같은 해에 도쿄 올림픽을 개최하였고, 신칸센 고속 열차를 개통하여 많은 편리성을 제공하였다.

 

4. 미국과 일본의 무역전쟁에 이은 미국의 협상 요구

바로 엔고와 달러 약세에 대한 진행이다. 이 요구를 받아들인 일본은 일본 수출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렸다. 많은 일본 기업이 수출에 의존했으나, 엔고와 달러 약세는 수출 경쟁력을 떨어뜨리게 되므로, 동남 아시아로 옮겨서 값싼 노동력을 써서 생산하고 수출하는 식으로 해외 이전이 많아졌다.

 

그렇다보니 일본 내에서는 신규 설비 투자가 멈추어 버리고, 수출품 생산이 감소하는 등의 침체로 들어서게 된다. 그 이후에 플라자 합의 1년 후, 1986년에 엔고 불황이 들이 닥친다. 이 불황을 막고자 일본 내에서는 빚을 늘려 시중에 돈을 팍팍 푸는 재정 정책을 실시한다. 그 덕분에 회복세를 띄게 된 일본. 그러나...

 

5. 땅과 주식의 막대한 투자

해외로 이전하는 기업을 막고자 엔화 약세를 추구했지만, 결국 갈 곳 없는 돈은 쌓이고 쌓여 모두 땅과 주식으로 몰리게 되었다. 버블 경제가 시작된 주요 시기이다.

 

땅에 연속된 투자로 인해 땅값은 올라가고 ,기업이 보유한 토지 값 역시 급등, 이것이 주가에 반영되 기업의 주가를 상승시키게 되었다. 이 것을 이용하여 전환 사채나 신주인수권부 사채를 발행해 비용이 싼 자금을 조달하여 다시 수익이 좋은 주식이나 부동산에 재투자하였다.

 

개인 역시 부동산을 가지고 있으면 부동산 값이 오르고, 값이 오르면 담보가치를 높게 쳐주니 대출도 많이 나오게 되었다. 대출이 많이 나오면 또 그돈으로 부동산을 구매하는 것이 반복되었다. 부동산에 투자하지 않으면 바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 낮은 금리였기 때문에 돈을 크게 빌리고, 묶어두면 바보였던 것이다.

 

그 속에서 호황을 누리던 일본 사람들이었지만, 그것은 꿈처럼 사라져 버렸다.

 

 

부동산의 몰락과정

1. 금리인상

부동산의 급격한 투기를 막고자 금리인상이라는 제한을 제시했기에 이자율이 크게 상승하게 되었다. 개인이 빌린 돈이 많다면 많은 금리에 시달릴 수 밖에...

 

2. 대출총량규제

부동산 대출 억제를 목표로 하는 대출 총량 규제를 발표했다. 부동산 총대출 증가율 이하로 억제하는 대출총량규제인 것이다. 요약하면 부동산 대출은 다른 대출의 양을 넘지 못하게 하는 것.

 

3. 빚쟁이의 증가

당연히 높은 금리로 인해 부담감은 더욱 가해지고, 대출총량규제로 부동산의 거품은 식을 수 밖에 없었다. 부동산의 집값은 당연히 떡-락. 결국 은행 빚을 갚지 못하는 부실채권이 늘었다. 이것은 은행 경영이 급격히 악화되는데 한몫하게 된다.

 

4. 기업의 부도

부동산 거품이 꺼지니 여기에 투자했던 기업도 당연히 손해를 볼 수 밖에 없었다. 소비가 위축되니 고객이 없어지는 것.

 

 

부동산 몰락의 진실, 은행의 운영

1988년 국제 결제은행은 '바젤합의'를 통해서 전 세계 은행들이 92년까지 자본금을 늘려 총 위험자산 대비 최소 8%를 자본금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규칙을 만들었다.

 

예를들어 은행이 대출해 준 기업이 도산한다면 은행은 부실채권이 늘어나 돈을 회수하지 못하고 은행 문을 닫을 수도 있다. 만약 은행에 최소 8%만큼을 자기자본으로 가지고 있다면 은행은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반면에 8%를 갖추지 못한다면 부실금융으로 인해 외화 차입을 못하기 때문이다. 외화거래를 못하는 은행은 무역시장에서 퇴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무역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일본 은행권은 무분별하게 대출을 내준 관계로 6%였으므로, 대출 규모를 줄일 수 밖에 없었다. 금리를 올려 대출을 급하게 회수하려고 하니, 생각없이 무작정 투자했던 사람들에게서 돈을 회수하기란 쉽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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